정신장애인의 인권-김영중 > 공지사항

본문 바로가기
게시판
공지사항
> 게시판 > 공지사항

 

 

 

 

 

 

 

공지사항

정신장애인의 인권-김영중

페이지 정보

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06-03-14 00:00 조회2,788회 댓글0건

본문

정신장애인의 인권
태화샘솟는집 김영중

저는 고2때 처음 조울증이 발병하여 휴학과 복학을 반복하다가 결국 정신요양원에서 14년 동안 생활을 했습니다. 제 청춘을 정신요양원에서 보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부모님은 일찍 돌아가셨고 형님이 저의 보호자였는데 가끔 면회 올 때 마다 “공기도 좋고 경치도 좋으니 이 곳에서 살아라!” 라고 했습니다. 심지어 자꾸 퇴원시켜달라고 조르면 기도원으로 보낸다고 했습니다. 저는 할 수 없이 정신요양원에 생활에 적응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한 세월들을 뒤로하고 정신보건법이 생겨나면서 입소 부적절군으로 판명되면서 퇴소를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퇴소 후에 이미 형제들은 저에게 등을 돌렸고 저는 갈 곳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회복지사님의 소개로 노숙자 쉼터인 자유의 집에서 몇 년을 보냈습니다. 말 그대로 자유로 왔지만 저는 제가 함께 생활하는 노숙인들에게 정신장애인임을 숨겨야 했기에 화장실에서 몰래 약을 먹는 불편한 생활을 했습니다.

저의 14년 동안의 요양원에서의 인권침해 사실은 이미 여러분들이 많이 알고 계시리라고 생각합니다. 나이도 저보다 10살 어리고 심지어 중학교 후배인 직원이 “영중아, 영중아” 반말로 부르며 직원들과의 알력으로 피해를 보기도 했습니다. 도망가다가 붙잡히면 발바닥이 피멍이 들도록 맞는 친구들도 보았습니다. 또한 병원공사 시 동원이 되었는데 일당 20,000원을 주기로 했지만 실제로는 5,000원씩 준적도 있었습니다.
제가 처음 고3때 입원했던 병원에서는 E.S.T를 5번이나 받았습니다. 재갈을 물리고 아무도 못 보게 하는데 다른 사람이 하는 것을 몰래 본 적이 있었는데 개구리처럼 누워있고 오줌을 싸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하게 되었을 때 너무 무섭고 겁이 나서 도망가려다 붙들려서 팔뚝에 전기충격을 해서 하루 종일 찌릿찌릿 하였습니다. 우리나라에 처음 생긴 병원이라 그런지 침대가 삐걱 삐걱 하였고 시설은 매우 지저분하였습니다.
또 한 요양원에서는 갱생원 아이들과 같이 있었는데 용변도 제대로 못 가리는 아이들을 방당 1명씩 정해 놓고 우리에게 하루에 담배 3가치로 그 아이들을 돌보게 하였습니다. 더 사랑받아야 할 아이들이었는데 맨날 얻어맞곤 하였습니다.
한 기도원은 일반 건물 3층인데 개조해서 안방, 거실, 심지어 신발 신는 곳에서도 잠을 자도록 했습니다. 방안은 습기가 많아서 지네 같은 벌레도 많이 있었습니다. 위생상태도 엉망이라 이가 있기도 하였습니다. 또 담배를 피우다 걸리면 창문틀에 매달아 놓고 때리곤 하였습니다.
돌이켜보면 이러한 일련의 일들이 어찌 저 한 사람만의 고통이겠습니까? 어서 빨리 시설도 좋아지고 담당 직원들의 생각고 변화해서 편안한 시설에서 사랑과 관심으로 함께 지내며 늘 웃음으로 지낼 수 있는 환경이 되길 바랍니다.

그 후 저는 요양원에서 나와 자유의 집에서 생활하다가 사회복지사님의 소개로 태화 샘솟는집에서 운영하는 하늘샘 주거생활을 하였습니다. 주거생활을 하면서 음식만들기, 장보기, 청소, 세탁 등의 일상생활과 타인과 어울려 살면서 대인관계에 대해서 배울 수 있었습니다. 기초생활수급 받은 돈과 임시 취업한 돈을 모아서 지금은 미아에 있는 15평 임대아파트에서 주거 생활을 함께 했던 두 아우와 함께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예전에 요양원에 있을 때 “나도 퇴소해서 사회에서 생활할 수 있을까?” 하면서 희망과 절망을 반복하면서 지냈던 세월이 이제는 꿈만 같습니다.

이제 제 나이 46세인데 “왜 진작에 이러한 생활을 못하고 오랫동안 요양원에서 세월을 낭비했나!”라는 회한과 저를 요양원에 방치했던 형님이 밉기도 합니다. 이렇게 사회에서 정상적으로 살 수 있었는데 왜 그 오랜 시간을 정신요양원에서 고통을 당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퇴소하고 싶어도 가족들이 허락을 하지 않고 마땅히 살 곳이 없기 때문에 정신요양원에서 인권의 침해를 받으며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직도 이런 이유로 정신요양원에서 자신의 권리도 모르는 체 살아가고 있는 정신장애인들이 많습니다. 하늘샘 같은 주거시설이 많이 생기고 정부에서도 지원을 해서 오랫동안 고생한 분들이 사회에 나와서 자신의 권리를 찾으면서 사회에 적응해서 잘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지금도 무허가 사설 기도원이 아직 많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고 제가 요양원시절 듣기로는 5백원만원이나 천만원씩 받고 평생 기도원에서 있는 회원들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러한 인권의 사각지대에서 고생하시는 분들이 많다는 것이 매우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정부차원에서 정신요양원처럼 양성화 시켜서 그 곳에 계시는 정신장애인들이 고생하지 않도록 해주셨으면 고맙겠습니다.
그리고 정신요양원에 있는 직원들과 운영주체들도 인식이 개선돼서 정신장애인들을 한 사람의 인격체로 생각하고 존중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또한 이런 인권에 관한 법적제도가 강화되어서 사람이 사람을 사람답게 대우하지 않는 이상한 일들이 생기지 않기를 바랍니다.
가족들도 물론 고통이 심하겠지만 정신장애인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가족부터 정신장애인에 대한 인권의식이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사회적 편견에 대해서는 우선 우리 장애인들부터 인식이 변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똘 아이야” 하는 표현을 하며 자신을 학대하지 말아야 할 것이며 우리들도 우리가 할 도리를 다하면서 떳떳하게 우리들의 권리를 주장해야 하다고 생각합니다.
정신 건강의 날도 생기고 정신장애인의 인권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자리들도 많이 생기도 있어 조금씩 우리들에 대한 사회적 편견도 많이 해소되어가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우리 정신장애인들은 누구보다 사랑받고 존중되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쉽게 상처받고 또 이내 사회적 뒤편에서 소외되어 있는 세상 누구보다 아름다운 사람들입니다.
“정신장애인과 더불어 사는 따뜻한 사회를 위하여”라는 주제로 우리 태화 샘 솟는집에서 “한마음 한걸음‘ 이라는 행사를 한 적이 있습니다. 이러한 인식개선 행사들이 많이 있어서 ”나는 정신장애인이다.“ 라고 말해도 이상하게 보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 아 갈 수 있도록 하는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날이 있기를 바랍니다.
인권, 사람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입니다. “정신장애가 있건 정신장애가 없건 간에 사람은 누구나 똑같다.” 라는 기본적인 원칙들이 실천되는 세상이 되길 바랍니다.
그리고 이 사회 곳곳에서 지금도 자신이 정신장애인이라는 것을 숨기고 열심히 일하고 있고 인권을 침해당해도 꿋꿋하게 자신의 삶을 살 고 있는 우리 정신장애인들에게 큰 박수와 격려를 보냅니다.

그러나 그 고통 속에서 나에게 작지만 힘을 준 사람들이 있었고, 앞으로 아우들과 함께 생활할 미래가 밝고 건강하기 때문에 이제 지나간 세월을 용서하려고 합니다.
국가에서 정신장애인의 인권을 지키는 제도와 법을 마련하여,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내가 경험했던 고통을 경험하지 않게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개인정보보호정책 | 사이트 이용약관 l 이메일 주소 무단수집 거부
우)34921 대전광역시 중구 대종로 488번길9 (은행동) | Tel:042-252-0360 | Fax:042-486-7143 | E-mail) kapr2008@hanmail.net
Copyright © 2006 한국정신사회재활협회(Korean Association for Psychosocial Rehabilitation) All rights reerved.
한국정신사회재활협회